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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보고서의 충격 - ...  {2019/09/02}
히르쉬펠트와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치 정권이 득세를 함에 따라 1940년대부터 성 연구의 주도권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연구방법 역시 사례연구에서 표본조사(survey)방식으로 바뀐다. 사례연구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반면에 표본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면담을 하거나 설문지를 메우게 하여 성생활에 관한 자료를 조사한다. 표본조사 방식으로 성과를 거둔 최초의
인물은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이다. 미국 전역에 걸쳐 1만8천 명을 면접해 얻은 1만2천 건의 자료를 묶어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킨제이 보고서'다. 한권(1948)은 남자, 다른 한권(1953)은 여자의 성 행동에 관한 것이다. ‘킨제이 보고서’는 성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함을 밝혀냄으로써 성생활에 대한 미국인의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성문제를 학문적인 연구대상으로 격상시킨 계기를 마련했다.
예컨대 오르가슴을 수반한 동성애를 적어도 한번 경험한 남성이 37%에 이른다는 킨제이의 발표는 게이를 혐오하는 미국사회가 더 이상
동성애의 존재를 외면하지 못하도록 했다. 동시에 게이 인권운동이 출현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여자에 관한 통계 중에서는 혼전 및
혼외정사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여자의 절반 정도가 혼전에 성교를 했으며 26%의 유부녀가 간통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자의 오르가슴에 대한 자료는 미국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자 역시 남자처럼 오르가슴에 탐닉하는 동물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가령 여자의 25%가 15살까지, 절반 이상이 스무살까지, 64%가 혼전에 이미 오르가슴을 맛본 것으로 보고됐다.
그리고 결혼 후 첫째 달에 49%, 6개월 이내에 67%, 1년 안에 75%의 신부가 오르가슴에 도달했다. 또한 오르가슴의 빈도에서 개인차가
드러났다. 남자가 한번 사정하는 사이 14%의 여자가 여러 차례 오르가슴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으며 열번 이상 오르가슴을 만끽한
여자들도 있었다. 동물학 교수 출신인 킨제이는 성 연구를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킬 결심을 하고 성행동에 관련된 생물학적 요소에
관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테면 발기조직인 페니스와 클리토리스의 측정을 시도했다. 무려 1만6천개의 페니스를 측정했는데 발기했을 때
평균 길이는 16.5cm, 가장 긴 것은 26.6cm였다. 그러나 클리토리스는 성적으로 흥분하면 포피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측정이 쉽지
않았다. 클리토리스는 그리스어로 ‘숨어 있는 것’을 뜻한다. 어쨌거나 킨제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지 않고서는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성교 장면 보면서 반응 관찰 표본조사가 성 경험의 연구에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성행동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령 성적으로 흥분되었을 때 고환 또는 음핵의 상태나 성교 도중에 발생하는
신체의 변화를 당사자가 현장에서 스스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표본조사로는 자료를 구할 길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의료장비를
동원해 제3자가 성교 장면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다.

동물의 교미는 자주 관찰대상이 되었으나 사람의 경우 공개적인 성행위는 아무래도 금기사항일 수밖에 없었는데, 미국의 윌리엄
마스터즈(1915-)와 버지니아 존슨(1925-)은 실험실에서 사람의 성교를 관찰해 1966년 ‘인간의 성반응’이라는 책을 펴냈다. 산부인과
의사인 마스터즈는 38살 되는 1954년부터 연구에 착수했으며 심리학자인 존슨은 조수로 참여했으나 훗날 아내가 된다. 이들은 21세에서
89세까지 남자 3백12명, 18세에서 78세까지 여자 3백82명 등 6백94명에 대해 실제로 성교 또는 수음을 시켰다. 심지어는 사진기가
달린 모조음경을 질 속에 넣어둔 상태에서 여자에게 수음을 시키고 오르가슴 순간에 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했다. 12년 동안 대략
1만회의 성반응 주기를 관찰했다.

마스터즈와 존슨에 따르면 인간의 성반응 주기는 성적 자극을 받는데서 시작해 오르가슴을 거쳐 다시 정상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흥분기, 고조기, 오르가슴기, 해소기의 네단계로 구분된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남자는 음경이 발기하고 여자는 질벽에서 윤활액이 스며나온
다음에 클리토리스가 커지고 음순이 벌어진다. 물론 유방도 팽창하고 유두가 발기한다. 흥분이 높은 상태에서 지속되는 고조기가 되면
남자는 귀두와 고환이 커지며 정액 일부가 귀두 밖으로 흘러나오고 여자는 질벽의 전체 모양이 맥주병을 거꾸로 세운 형태가 되며
클리토리스는 질 입구에서 멀리 올라가 숨어버린다. 성적 쾌감의 절정을 맛보는 오르가슴기에는 남녀 모두 전신에 걸쳐 근육의 수축과
경련이 일어나며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 박동과 호흡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배우자의 몸을 힘차게 끌어안는다. 해소기에 접어들면 음경은
줄어들고 질, 음핵, 유방 모두 원래 크기로 돌아간다. 마스터즈와 존슨은 인간의 성반응에 관한 생체실험을 통해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먼저 음경이 크다고 해서 발기 후에도 반드시 크란 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7cm인 음경은 발기할 때 1백20% 늘어났지만 11cm
짜리는 50% 밖에 커지지 않은 실험결과가 나온 것이다. 둘째 음경이 클수록 여자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질의 틈새는 삽입 직후
몇번 왕복하는 페니스의 길이와 굵기만큼 벌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여자는 남자와 달리 여러 차례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다. 실험결과에
따르면 젊은 여자가 한번의 성교에서 6-12회 오르가슴에 도달했다. 어느 여자는 남편이 사정하고나서 수음으로 25회, 곧바로 모조음경을
삽입하여 21회 등 모두 46번의 오르가슴을 한번 누운 자리에서 경험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넷째 80살 전후의 노인들도 남녀 모두 정상적인
성교가 가능할 뿐 아니라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같이 마스터즈와 존슨 부부는 성과학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업적을
남겼지만 1992년 이혼한다.

성 연구는 과학인가 마스터즈와 존슨 이후 성과학은 학제간 연구의 본질을 드러냈는데, 대표적인 보기는 성별(gender)에 대한 연구이다.
젠더는 1955년 존 머니가 기존 생물학적 성(남자 또는 여자)에서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과 같은 사회적 성을 구분하는 용어로 채택함에
따라 사회과학과 성과학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태생의 미국 심리학자인 머니는 이 용어의 사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면서 1960년대 이후 성문제 연구의 중심인물이 된다. 젠더와 관련된 문제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성연구의 핵심과제로 부각됐다.
1960년대 이후 성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페미니즘 이론이 미친 영향이다. 미국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1920년에 이어 2차로 밀어닥친
이른바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은 베티 프리단이 1963년 펴낸 ‘여성의 신비’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미국 여성들이 풍요로운 전후 사회에서
자신들의 역할에 점차 불만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여권운동의 두번째 물결을 주도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멸시를 조장하거나 강간을 자극하는 외설물에 대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직장 내의 성희롱이나 아동에 대한 성폭행을
처벌하는 법률의 미온적인 대처를 비판했다. 요컨대 페미니스트들은 성문제를 정치적으로 쟁점화해 성차별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인간의 성문제는 생물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성과학이 과학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과학은 객관적인 자료에 의존하지만 성문제에 관한 자료가 항상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성 연구의 역사를 집대성한 ‘침실의 과학’(1994)을 펴낸 미국의 번 벌로 교수가 이 저서의 말미에 언급한 다음 대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성과학은 과학적 연구를 할 만한 주제를 갖고 있으며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된 정보를 풍부하게 갖고 있다.
성과학은 학제간 연구이므로 전통적인 과학과는 다르다.(중략) 그러나 성연구의 모든 측면이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성 연구는 과학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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